지미 더글러스

최근 수정 시각: (5년 전)
이름
제임스 에드워드 더글러스
(James Edward Douglas)
생년월일
사망년월일
국적
출신지
뉴저지 이스트뉴어크
포지션
신체조건
188cm
등번호
소속팀
해리슨 (1922-1923)
뉴어크 스키터스 (1923-1925)
뉴욕 자이언츠[2] (1925-1927)
폴리버 마스크맨 (1927-1928)
필라델피아 필드 클럽 (1928)
브루클린 원더러스 (1928-1929)
폴리버 마스크맨 (1929)
뉴욕 자이언츠 (1929-1930)
뉴어크 아메리칸스 (1931-1932)
국가대표
9경기 / 0골 (1924-1930)

FIFA 월드컵 최초의 클린시트 기록자


목차
1. 생애
1.1. 클럽1.2. 국가대표1.3. 은퇴 이후
2. 뒷이야기3. 수상
3.1. 클럽3.2. 국가대표3.3. 개인

1. 생애 [편집]

1.1. 클럽 [편집]

지미 더글러스는 9살 무렵 뉴어크의 센트럴 주니어스라는 클럽에서 축구를 배웠다고 알려져 있다. 이후 14년 간 아마추어 팀에서 주로 활동했고, 해리슨이라는 클럽에서 처음 ASL에 발을 들여놓았다.

1923년 이후 각각 2년씩 뉴어크, 뉴욕 자이언츠에서 활동하였는데, 뉴욕 자이언츠로 옮길 때 계약 문제가 겹쳐서 잠시 뉴욕 자이언츠에서는 뛰지 못하기도 했었다. 그는 그 이후 당시의 많은 미국 선수들이 그랬듯 저니맨 생활을 하였고 1931년 뉴욕 아메리칸스에서 은퇴하였다.

1.2. 국가대표 [편집]

더글러스의 첫 국가대표 출전 기록은 1924년 올림픽에서 찾을 수 있다. 에스토니아를 만나 1대0 신승을 이끌어내며 MOM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. 하지만 운 나쁘게도 다음 경기는 남미의 강호 우루과이였고, 결국 우루과이의 파상 공세를 막아내지 못한 채 3대0으로 패배의 쓴 맛을 보고 말았다.

더글러스는 또한 초대 월드컵에도 참가했다. 당시 미국 대표팀의 3경기에 모두 참가하였고 벨기에를 상대로 월드컵 역사상 최초의 클린시트도 기록하였다.

그러나 4강전에서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한 경기에서 부상을 입게 되었다. 당시 경기 규정 상 대체 골키퍼가 들어갈 수 없는 상황. 무릎 부상인지라 운동 능력이 크게 떨어진 더글러스를 빼고 다른 필드 플레이어에게 골키퍼를 맡기느냐, 아니면 부상 입은 채로 경기에서 아예 빠지느냐의 갈림길. 그래도 아예 못 뛸 정도의 심각한 부상이 아니었고, 한 명이 빠지는 것 보다는 나았기 때문에 더글러스는 경기를 끝까지 뛰었다. 이렇게 미국은 더글러스의 공백을 제대로 메우지 못한 채 아르헨티나에게 6대1로 대패하였고 올림픽에서의 복수도 실패하였다.

월드컵 이후에는 브라질과의 친선 경기에 출전하였으나 4대3으로 패배하였고, 더글러스는 통산 9회의 국가대표팀 출전 기록과 3개의 클린시트 기록을 남겼다.

1.3. 은퇴 이후 [편집]

더글러스는 1954년 미국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 되었고, 1972년에 뉴저지의 포인트 플레즌트에서 사망하였다.

2. 뒷이야기 [편집]

  •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더글러스는 축구로 돈을 받기를 거부했다고 한다.

3. 수상 [편집]

3.1. 클럽 [편집]

  • 미국 축구 리그 우승 1회: 1929(폴리버 마스크맨)

3.2. 국가대표 [편집]

  • 월드컵 3위 1회: 1930

3.3. 개인 [편집]

  • 미국 축구 명예의 전당: 1953

[1] 이 시대에는 등번호가 존재하지 않았다.[2] 흔히 알고 있는 메이저리그뉴욕 자이언츠와는 다르다.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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